천년왕국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 박철동 | 2018-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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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요한 계시록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동안 다스린다고 하는 특정한 사람들을 언급한다(계20:4). 이 구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천년왕국 내지 천 년 통치의 본질에 대한 최소한 네 가지 주요 견해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 네 가지의 견해는 무천년설, 후천년설, 역사적 전 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천년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천년설이라는 용어는 별로 달가운 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무천년주의자들이 어떤 천년왕국도 믿지 않거나 천년 통치를 언급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0장의 처음 여섯 절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인상을 준다. 무천년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어질 문자적인 천 년 동안의 지상 통치를 믿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천년설이라는 용어는 그들의 견해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 아니다. 제이 애덤스는 [때가 가까웠다]라는 저서를 통해 무천년설이라는 용어를 실현된 천년왕국설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표현은 분명히 무천년설의 입장을 ‘무천년설’이라는 흔한 용어보다는 더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이란 오로지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실현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20잘 4절-6절에서 언급된 천년왕국을 현재 죽은 신자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해석한다. 그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처음 세 절에서 언급된 사탄의 결박을 비록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끝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 동안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이 천상의 천년 통치 이후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무천년주의자들은 더 나아가 내세에 새로운 땅위에 임할 미래의 영광스럽고 완벽한 나라를 고대하면서도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고 계시므로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 세상에 현존한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가 죄와 악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악의 왕국은 세상 끝까지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와 나란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금 많은 종말론적 복을 누리고 있지만(시작된 종말론) 최종 상태의 도래를 알릴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장차 있을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을 바라본다(미래 종말론). 이른바 ‘시대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세상에 있어 왔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더 강화된 최종적인 표현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천년주의자들은 복음이 온 열방에 전해지고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회심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완결될 것으로 예상한다. 무천년주의자는 또한 재림 이전에 있을 인격적인 적그리스도의 출현 뿐만 아니라 강화된 형태의 환난과 배교를 예상한다. 무천년주의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국면을 포함한 사건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신자와 불신자 모두의 전체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다. 부활 후에 그때까지 살아 있는 신자들은 변형되어 영화롭게 될 것이다. 이 두 집단, 즉 부활한 신자들과 변화된 신자들은 그 다음에 구름 속으로 올려져 고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신자의 ‘휴거’ 후에 그리스도는 땅으로의 강림을 마치고 최후의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심판 후에 불신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반면에 신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다. 후천년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후천년주의자들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무천년주의자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첫째, 후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을 지상의 보좌에서의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통치를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둘째, 후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을 정확히 천 년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 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천년왕국 이후로 설정한다. 후천년설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점점 더 높은 인구 비율이 복음 전파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현 시대는 점차 천년왕국 시대로 변할 것이다. 이렇게 그 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그리스도인들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포함될 것이다. 후천년주의자들은 로마서 11장 25절-26절을 유대인의 정치적 왕국의 회복을 내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 민족의 미래에 있을 대규모 회심으로 이해한다. 천년왕국이 현실이 될 때 기독교적 믿음과 행실의 원리는 각 나라와 각 개인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이 될 것이다. 죄는 제거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축소될 것이다. 인류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삶은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 전 세계에 일반적인 번영이 있을 것이고 부가 더 널리 공유될 것이며 사막이 장미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전에는 서로 적대적이었던 나라들이 조화롭게 서로 협력할 것이다. 이 영적 번영의 황금시대는 오랜 기간동안, 아마도 문자적인 천 년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뵈트너의 말을 빌리면 ‘이는 이 지구상에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시대가 찾아 오거나 모든 죄가 없어질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온갖 형태의 악이 결국 무시할 만한 비율로 축소될 것이고 기독교적 원리가 예외가 아닌 규칙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가 진정을 기독교화된 세계로 다시 오실 것임을 뜻한다.’ 로레인 뵈트너와 마셀러스 킥(또 다른 후천년주의자)은 둘 다 마태복음 24장의 큰 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배교는 이미 지나가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뵈트너는 천년왕국 끝에 있을 사탄의 놓임을 묘사하는 요한계시록 20장 7절-10절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전에 있을 ‘제한된 악의 출현’을 예상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러한 사탄의 놓임과 그 때 사탄이 개시할 교회에 대한 공격은 그 기간이 짧으며 교회에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후천년주의자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마지막 악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미래의 천 년 동안의 황금기에 대한 예상을 결코 무로 돌아가게 할 수 없다. 후천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서 어떤 성경적 증거를 제시하는가? 뵈트너는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의 지상 명령을 인용하는데 거기서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사로 삼으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은 단지 복음이 전파될 것이란느 고지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전에 모든 민족의 효과적인 복음화가 완결될 것이라는 약속을 함축한다고 뵈트너는 말한다. 뵈트너는 마태복음 16장 18절도 언급하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지옥의 문들도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뵈트너는 이 구절을 교회가 공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온 세상에서 전진하며 말 그대로 아무것도 교회의 지속적인 행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후천년설에 대한 반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후천년주의자들이 미래에 있을 천 년의 황금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구약의 예언들은 구속된 공동체의 최종 상태를 묘사한다. 세퍼드 교수는 이런 종류의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의 통치를 가리킬 리가 없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후크마 교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종 상태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존재할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예언들은 그 궁극적 의미에 있어서 그 새로운 땅 위에서의 생명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둘째, 마태복음 24장의 큰 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배교에 대한 후천년설의 일반적인 해석은 정당하지 않다. 마태복음 24장의 감란산 강화는 예루살렘의 파괴와 관련된 사건들과 세상 끝과 관련된 사건들을 모두 다른다. 예수님은 이 강화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걸쳐서 환난을 예상해야 함을 보여 주시만 또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그런 큰 환난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데살로니가후서2장의 배교와 관련해서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진술한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전에는 그 날[주의 날 또는 재림]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그러므로 이 두 사건, 즉 큰 환난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묘사된 배교를 오로지 과거의 일로만 취급해야 한다고 말하는데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다. 셋째, 요한계시록 20잘 1절-6절은 후천년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본문은 지금 이 시대 동안 신자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지 미래의 황금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있을 미래의 황금기에 대한 후천년설의 기대는 세계사 속에서 지속되어 온 하나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선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셨다. 이 대립 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악이 ‘무시할 만한 비율로 줄어 들’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성경의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역사에 대한 지나치게 낭만적인 단순화로 보인다. 그리스도는 분명 죄와 사탄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고 그래서 이 싸움의 최종 결과는 결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적들 사이의 대립은 끝까지 계속 될 것이다. 역사적 전천년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구별된다.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천 년의 기간 동안, 그리고 최종 상태가 시작되기 이전에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가 있을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에 대한 입장의 독특한 점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 전천년설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 전에 열발의 복음화, 큰 환난, 큰 배교 내지 반역, 인격적인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여러 사건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교회느니 이 마지막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2단계의 사건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죽었던 신자들은 부활 할 것이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신자들은 변화되어 영화롭게 될 것이며 그 후에 두 집단 모두 함께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이 공중에서의 만남 뒤에 신자들은 지상까지 강림하시는 그리스도와 동행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강림하신 뒤 적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고 적그리스도의 억압적인 통치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시점이나 그 이전에 그때까지 살아 있던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믿으며 구원을 받는다. 이 유대인들의 회심은 세상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제 자신의 천년왕국-대략 천 년 동안 지속된 나라-을 세우신다. 에수님은 이제 가시적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지만 예수님의 구속받은 백성도 예수님과 함께 다스린다. 이 구속된 백성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은 대부분 이방인의 추수 이후 새로이 회심했지만 별개의 집단으로 구성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천년왕국 동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이들은 새로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이들과 그리스도가 재림하셨을 때 아직 살아 있던 신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 시대에 지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믿니 않는 민족들은 그리스도가 철장으로 제재하시고 다스리신다. 천년왕국을 최종 상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죄와 사망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은 크게 억제될 것이며 의가 지상에서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편만해질 것이다. 이 시대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정의의 시대, 큰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심지어 자연도 이 시대의 복된 상태를 반영할 것이다. 땅도 대단히 비옥해지고 사막도 장미처럼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끝날 즈음에 이 기간 동안 결박되어 있던 사탄이 풀려나 다시 한 번 열방을 미혹하러 나올 것이다. 사탄은 곡과 마곡의 전쟁을 위해 반역하는 민족들을 모아서 그들을 이끌고 ‘성도의 진영’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반역하는 나라들 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사탄은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천년왕국이 끝난 뒤에 죽은 불신자들의 부활이 뒤따른다. 이제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크고 흰 보좌 앞에서의 심판이 발생한다.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반면 자기 이름이 그 책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람들은 불못으로 던져질 것이다. 이 심판 뒤에 최종 상태가 시작된다.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는 반면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은 모든 악이 일소된 새 땅에서 영원히 산다. 역사적 전천년설에 대한 쟁점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단지 성경의 한 부분에만, 그것도 묵시록에 나오는 ‘천년’이라는 문구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비판받는다. 하지만 전천년주의자들은 오히려 요한계시록을 상징적으로만 이해하려는 태도를 반대한다. 사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이 요한계시록 2-3장의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천년’이 요한계시록 20장에 등장하는 6번의 횟수는 ‘삼위일체’가 성경에 언급되는 횟수(0번) 보다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둘째, ‘재림후 천년왕국’이라는 구도와 ‘ezhsan’을 문자적인 육체의 부활로 보는 시각이 요한계시록 20장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이들’을 부활한 성도와 재림 시 살아있던 성도들의 두 그룹으로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두 번의 독립된 부활 사건의 근거로 제시된 (고전 15:23-24)은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에 대한 어떤 근거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바울의 다른 서신 가운데 종말에 앞서는 지상에서의 과도기간 같은 것이 나오는 본문은 없다. 넷째,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와 부활한 성도들이 죄와 사망이 여전히 존재하는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어떻게 나중 형편이 더 나빠질 수 있는가. 다섯째,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은 현세에도, 내세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신약의 종말론에 어긋난다.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어디에도 현세와 내세 사이에 제3의 시대가 있을 것이라는 암시는 전혀 없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대한 정리는 다음과 같다. 존 넬슨 다비(1800~1882)가 창시한 세대주의 신학의 두 가지 기본원리는 첫째, 예언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둘째, 이스라엘과 교회는 근본적이고 절대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대주의를 대표하는 주장들이 실려 있는 1967년판 <새 스코필드 성경>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7 시대로 나뉜다. 즉 순수 시대, 양심 또는 도덕적 책임 시대,인간 정부 시대, 약속 시대, 율법 시대, 교회 시대, 왕국 시대이다. 여기서 ‘시대’는 ‘인간이어떤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의 계시에 대한 순종과 관련해서 검증받는 기간’으로 정의된다.하나님은 각 시대별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지만 그럼에도 모든 시대를 통틀어 오직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25) 구약의 많은 예언들은 미래의 어느 때에 하나님이 옛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하는 지상의 한 왕국이 건설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고 보며 여기에는 아브라함, 다윗, 예레미야 31장 31-34절, 시편과 선지서의 많은 본문들이 포함된다. 세대주의자들은 이 예언들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성취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특이한 것은 이들은 구약에 예언된 것이 다윗 왕국이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표 속에서 하나의 ‘막간’에 해당하는 위치를 차지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하신 프로그램의 중간에 ‘삽입된(끼어든)’ 것으로 본다.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세대주의자들 간에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천년왕국과 관련된 종말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로 일어난다고 이해한다. 첫 단계는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인데 이 때 구약시대 성도들을 제외한 죽은 성도들의 부활, 살아있던 이방인과 유대인 성도들의 영화 그리고 이들의 휴거가 발생한다. 이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올라 가 7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벌인다. 이 7년 동안 다음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단 9:27)의 환난이 시작되는데 그 후반기가 소위 ‘대환난’이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한다. 지상 거민들에게 무서운 심판이 임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며, 이들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이들을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계 7:9). 하지만 땅의 왕들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기 위해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킨다. 7년이 끝나면 그리스도가 교회와 함께 영광중에 지상에 재림하셔서 원수를 멸하시고 전쟁을 끝내신다. 살아있던 유대인들의 대다수는 그리스도께 돌아와 구원을 받아 구약-신약의 예언이 성취된다. 사탄는 결박되고 무저갱에 던져져 천년 동안 인봉된다. 7년 환난 기간 중에 죽은 성도들은 이때 부활하는데 이들은 곧 시작되는 천년왕국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하늘에서 휴거된 교회를 구성하는 부활/영화된 성도들과 합류하게 된다. 곧이어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이방인심판(마25:31-46)과 유대인심판(겔 20:33-38)이 시작된다. 여기에서 양과 염소가 구분되어 각각 천년왕국에 참여하거나 영원한 불 속으로 던져진다. 이제 천년왕국이 시작된다. 역사적 전천년설과는 달리 세대주의 전천년설에선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만 지상에 남아있다. 이들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대다수는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인간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놀라운 번영의 시대가 이루어진다. 예배는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그 제사는 속죄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기념제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 부활한 성도들은 천년왕국 기간 동안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된다. 지상에는 많은 자녀들이 새로 태어나는데 이들 대다수는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며 반역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천년이 끝날 때 사탄이 풀려나서 이들을 규합해 마지막 반란을 일으킬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궤멸되고 원수들은 멸망당하고 사탄은 불못에 던지운다. 천년이 끝나기 전에 이 기간 중 죽었던 성도들은 모두 부활할 것이고 천년이 끝나면 불신자들이 모두 부활하여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그 다음이 최종상태이다. 부활한 성도들이 거하던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새 땅’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여기서도 구속받은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는 영원한 구분이 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대한 쟁점사항은 다음과 같다. 후크마가 그의 종말론 책의 한 장(章)을 온전히 세대주의 비평에 할애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내용들 중 중요한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에 대해 하나님이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다른 목표를 가지고 계시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이 교회를 말할 때 육적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말할 때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믿는 이방인의 미래와 믿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분리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신약교회 전체를 상징하는 신약 본문이 하나 이상 있고(갈 6:15-16) 베드로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 사용된 어휘들인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을 사용해서 이방인들이 중심이었던 신약교회를 지칭하 였으며(벧전 2:9) “아브라함의 자손”도 기독교인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고(갈 3:28-29) 이는 시온과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히 12:22-24; 계 21:2).34) 둘째, 세대주의에선 구약이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 65:17-25; 사 11:6-10; 겔 40-48장; 사 2:1-4). 하지만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없으며 오히려 그 본문들은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최종적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셋째, 천년왕국 시대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회복되어 돌아간다고 보는 세대주의의 시각은 주석학적 오류에 기인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이 자기 땅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예언(사 11:11-16; 렘 23:3,7-8)은 BC 6세기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귀환할 때 이미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많은 구약본문들은 이처럼 문자적 의미에서, 신약교회의 기적적인 탄생과 성장에 대한 비유적 의미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최종적인 “새 땅”에서 달성될 원형적 의미에서 그 성취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세대주의가 하나님 나라의 지연을 가르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예수님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이 주님을 거부해서 하나님 나라를 연기하셨다는 이론이 모순된 것은, 이미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 성경에 분명히 나오고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마 12:28)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대주의자들의 가르침과 달리 지상에서 보좌에 오르려고 노력하셨던 분도 아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8:36). 세대주의적 가르침은 당대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그대로 받아들였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까 하는 의문을 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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